歌王

 저희 부모님께서는 생전 무슨 공연을 찾아다니신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딱 한 번, 당시 초등학생이던 저와 제 남동생에게는 어디 좀 다녀올 곳이 있다고 속이고 어느 가수의 디너쇼를 다녀오셨다가 그 티켓이 걸려서 저희의 엄청난 비난을 들으셨죠. 우리만 놔두고 좋은 구경 다니신다며 징징거리는 저희에게도 엄청 흐뭇하게, '사실 정말 좋았다'고 털어놓으실 정도로 마음에 드셨나 봅니다. 그 가수는 조용필이었습니다.


 20대의 나이에는 안 어울리게 김광석과 김현식의 노래를 매우 좋아하고 노래방에서도 즐겨부르는 마산야수는 조용필 또한 좋아합니다. '단발머리'나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 '킬리만자로의 표범'은 물론이고 사실 롯데의 응원가로도 쓰이는 '돌아와요 부산항에' 역시 격하게 아낍니다. (이것은 리버풀팬으로서 You Will Never Walk Alone'을 부르면서 느끼는 전율과 같은 것일지도...^^)

 그래서 당연히 어제 '가왕' 조용필의 (무려!!!)19집 앨범 [Hello]의 음원들이 모두 발표되자마자 모두 들어보았습니다. 개인적으로 선 공개된 'Bounce'만 듣고도 정말 대단하다고 감탄하며 다른 음원들이 발표되기를 기다렸는데, 감상은... 한 마디로 정의하기는 조금 어렵습니다.



도전

 우선 이번 앨범에 대하여 감탄할 수밖에 없습니다. 종종 방송에 나와서 예전 히트곡 몇 소절 부르고, 당시 스타들과의 추억 몇 마디 털어놓기만 해도, 그는 쉽게 잊혀지지 않는 독보적 위치에 있는 인물입니다. 그런 그가 60대의 나이에, 새로운 도전으로 가득한 정식 앨범을 냈습니다. 시기적으로는 '월드스타' 싸이Psy와 정면 승부를 벌여야 하고, 음악적으로는 전반적으로 락에 기반을 둔 모던한 느낌에 20대들이 좋아하는 감성 래퍼 버벌진트의 피쳐링까지 가미하기도 하고, 감성은 말랑말랑한 게 젊음이 가득합니다.

 

그대가 돌아서면 두 눈이 마주칠까

  심장이 Bounce Bounce 두근대 들릴까 봐 겁나

  한참을 망설이다 용기를 내
  밤새워 준비한 순애보 고백해도 될까

-'Bounce' 中

 

 정말 이 가사가 60대의 입에서 흘러나오는데도 어쩜 그리 덤덤하고 또 매력적일까요. "네 흔적을 타투처럼 새길게 Hello~♪ ('Hello' 中)"이라는 가사가 20대의 입에서 흘러나온다면 너무 느끼할 것 같지만 관록의 가왕은 소녀팬이었던 지금의 어머님들을 매료시키고, 젊은이들까지도 탄성 짓게 만듭니다. 혹자가 그러더군요. 정치에서 못 이루던 그 놈의 '통합'을 가왕이 세대통합으로 실현시켰다고.



너무 가볍다? 

 그런데 이러한 변화가 모두에게 도전으로 보이는 것은 아닌가 봅니다. '돈이 급했냐', '아이돌들이 부럽더냐'는 악플도 드문드문 보았습니다. 그러나 이번 앨범이 가볍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앞만 보고 달려온 지난날의 추억을 아파하지 마라. 나는 왜 귀로를 맴돌고 있나('어느 날 귀로에서' 中)"처럼, 연륜이 묻어나는 가사들에서 회한을 털어놓기도 하고, "거친 광야를 가로질러 눈 덮인 산을 넘어 격류를 거슬러 올라가 ... 인생의 길을 열어 살아갈 용기 갖으리('그리운 것은' 中)"라고 노래하며 젊은 날 소녀들을 환상으로 이끌던 여전히 '젊은 오빠'의 모습을 과시하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그는 더욱 위대합니다. 음원 저작권 개념이 부족하던 시절, 사기에 가까운 계약 조건 때문에 막대한 손해를 보았다는 과거도 그에게는 영광의 세월 속, 아쉽지만 조그마한 기억의 조각일 뿐입니다. 수십년 동안 한국 가요계의 최정상을 지키면서도 항상 여유가 묻어나는 그가 진정한 가왕입니다.



배우라면 안성기, 가수라면 조용필처럼

 왠지 모르게 이번 앨범 전곡을 듣고나니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안성기와 조용필이 많이 닮아있다고.

 두 분 모두 각자의 분야에서 수십년 동안 최고의 자리를 지키면서 많은 팬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팬들과 함께 늙어갑니다. 그러나 절대 '곱게' 늙지 않습니다. 파격적인 변신들을 하죠. 안성기가 죽은 친구의 딸과 사랑에 빠지는 50대 남성으로 분했던 '페어러브(2009)'가 아직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아마 조용필의 이번 앨범도 그럴 것입니다.

 단순히 조용필의 새로운 도전으로만 오래 기억되길 바라지 않습니다. 한때 너무나도 사랑받았던, 지금은 왜곡된 대한민국의 음악 시장에서 잠시 소외된 그들이 '아직 나 죽지 않았다며, 실력으로 승부해보자'고 다시 한 번 소리쳐올 날을 기다립니다.

Posted by 마산야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