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중 참사'라는 꼬리표를 달고 마무리된 3회 WBC 한국 대표팀의 명단이 처음 공개되었을 때 가장 많은 이들이 고개를 갸웃거린 부분은 내야의 두 포지션에만 세 명의 선수(1루수 이승엽, 이대호, 김태균/유격수 강정호, 손시헌, 김상수)를 선발했고, 나머지 두 포지션에는 한 명의 선수만을(2루수 정근우, 3루수 최정) 선발했던 점이었습니다. 정근우와 최정 선수의 백업에 대한 의문에는 강정호는 3루 수비가 가능하며, 김상수는 2루 수비가 가능하다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유격수는 내야 수비의 핵이며 가장 넓은 범위를 수비하며, 심지어 우리는 그들에게 약간 '타격은 부족해도 좋으니 수비 하나만이라도 안정적이길 바란다'는 면책권까지 쥐어주곤 합니다. 그래서 보통 가장 수비를 잘한다는 선수들이 유격수인 경우가 많고, 유격수 출신의 선수들이 다른 내야 포지션으로 이동하는 경우도 심심찮게 볼 수 있습니다. 롯데의 황재균 선수가 유격수 출신이었으나 강정호 선수와의 경쟁 과정에서 3루수로 전환했고, 안치홍 선수도 유격수 출신입니다. 또한 역대 최고의 1루수로 손꼽히는 장종훈 선수도 유격수 출신으로 골든글러브를 두 번(88, 90)이나 수상했습니다.

 그러나 현대야구가 세밀해지고, 그 분업이 확실해지면서 더 이상 유격수가 무작정 다른 내야 포지션을 잘 맡을 수 있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워졌습니다. 예전만 해도 나이가 들면서 수비는 부족해지고, 여전히 방망이는 활용도가 높은 선수들에게 대체로 1루수비를 맡기곤 했지만 점점 그런 경향이 약해지는 것과도 상통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타고난 수비 재능과 훈련을 통해서 좋은 전환이 가능할 수도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피나는 훈련'이 전제된 결과입니다.

 

 

뼈기혁? 나 이래뵈도 국가대표 출신 내야수, 데릭 기혁이야

 2008년, 8년 만에 가을 야구를 하게 된 롯데 자이언츠에는 전과는 180도 달라진 유격수가 있었습니다. 바로 타율 0.291, 36타점, 47득점, 16도루로 골든글러브를 수상한 박기혁 선수였습니다. 너무 말라서 살찌우는 훈련을 하기도 했다는 그에게 롯데팬들은 '뼈기혁'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습니다. 박기혁 선수는 박진만 선수를 대신해 2009년 2회 WBC 대표팀에서 주전 유격수로 활약하면서 수비 실력을 마음껏 뽐내기도 했습니다. 드디어 박기혁 선수의 전성시대가 오는 듯 했죠.

 그러나 이후 부상과 부진으로 병역 특례가 걸린 2010 광저우 아시아게임 대표팀에 승선하지 못했고, 공익근무요원으로 2010년 말 입대했습니다. 드디어 2년의 군 복무를 마치고, 2013년 복귀합니다. 시범경기에서도 2경기 동안 5타수 2안타로 타격감을 조율하며 팬들의 기대를 높이고 있습니다.

 

문리바? 문대호라 불러주오

 그런 주전 유격수 박기혁 선수가 군 복무를 하는 동안, 롯데의 주전 유격수는 문규현 선수였습니다. 아직도 문규현 하면 처음 떠오르는 별명은 문리바입니다. 바로 2007년 현대와의 경기 중 포수 플라이를 처리하려는 강민호 선수를 보지못하고 3루 수비를 하던 문규현 선수가 흡사 농구경기에서의 리바운드처럼 공을 쳐내버렸던 장면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난 2년간 문규현 선수는 많은 발전을 했습니다. 낮은 타율로 많은 질책을 받기도 했으나, 에이스 감별사라고 불릴 정도로 유독 리그 최고급의 투수들에게서 결정적인 안타를 쳐내기도 했고, 특히 2011년 7월에는 4할2푼3리, 10타점, 14득점을 기록하며 '문대호'라고 불리기까지 했습니다. 수비에서는 매우 뛰어나지는 않지만 무난하고 안정적인 수비를 해오면서 2년간 그의 몫을 묵묵히 해내왔습니다.

 

경쟁? 공존?

 2013년 롯데의 유격수 자리는 신-구 주전 유격수들의 경쟁이 치열할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그런데 시범경기 이틀 째이던 10일 일요일, 문규현 선수의 2루수 가능성이 대두된 것입니다. 물론 시범경기 중에는 다양한 포지션 실험이 가능합니다. 박준서 선수의 외야수 겸업 실험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롯데 야수진에서 늘 지적되어 온 점은 젊은 선수들의 성장이 너무 더디다는 것입니다. 만약 문규현 선수가 박기혁 선수보다 많이 어리고, 경험이 부족해서 꾸준히 1군 무대를 밟게 하며 미래를 준비하게 하려는 복안이라면 모를까, 문규현 선수는 박기혁 선수보다 딱 2살 어린 83년생입니다. 차세대 유격수를 바라보고 경험을 쌓게 하는 것도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그간 주전 2루수였던 조성환 선수가 당장 출전이 불가능하냐면, 그것도 아닙니다. 물론 많은 나이로 풀타임 활약은 어려울 것이고, 타격에서도 하락세가 보이는 조성환 선수입니다만 여전히 타격에서는 문규현 선수와 비교할 수준이 아니고, 문규현 선수의 2루 수비는 SK와의 시범경기에서 보았듯이 그리 안정적이지조차 못합니다. 그리고 2루에는 손용석, 정훈 등 꾸준히 롯데가 관리해온 내야수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비록 2군에서였지만 좋은 타자들로서 활약한 이들의 타격 잠재력은 문규현보다 더 클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문대호라고 불리던 시절도 있었지만, 문규현 선수가 주전으로 활약한 2년간 기록한 타율은 2할2푼6리입니다.

 

물론 실험은 가능, 그러나 유격수는 다른 내야 포지션 가능하다는 생각 그만!

 물론 시범경기 한 경기였을 뿐입니다. 또한 다양한 경쟁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선수들의 의지를 고취시킬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절대 유격수는 만능 내야수가 아닙니다. 빠른 대쉬로 번트 등 짧은 타구를 처리하고 더 긴 송구를 필요로 하는 3루수, 유격수보다 수비범위는 좁고 송구 거리도 짧지만 상당히 어려운 수비 및 송구 상황이 많은 2루수, 수비범위가 좁지만 빠른 라인드라이브가 많고 악송구들도 안정적으로 포구해야 하는 1루수는 이제 모두 전문적인 포지션이 되었습니다. 물론 포지션 전환은 가능합니다. 그러나 오직 꾸준한 훈련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이를 잊고, 분업화되고 안정적인 수비가 기본인 현대야구에서 유격수는 만능 내야수라는 구시대적 발상에 사로잡혀서는 안 될 것입니다.

 

사진 출처 : 롯데자이언츠 홈페이지

Posted by 마산야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