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스

 국제대회 2회 출전, 3경기 18.1이닝 2승 ERA 1.96

 분명 호성적인데 어느 선수인지 쉽게 감이 오지 않으실 겁니다.

 베이징올림픽, 전승 우승 신화의 길목이었던 아마야구 최강 쿠바와의 일전 6.1이닝 3실점 QS 승리투수. 많은 이들이 그의 국제대회에서의 성적을 기억해주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분명 꼬여버릴 수 있는 상황에서 제몫을 해주는 선수입니다.

 네 그는 바로 '송삼봉' 송승준입니다.

 그는 프로야구 최고의 인기구단 롯데 자이언츠의 에이스입니다. 08년도 입단 이후 손민한, 사도스키, 유먼 등 에이스로 불린 다른 선수들과 함께였지만 그는 풀타임으로 출전하기 시작한 2008년 이후, 그러니까 최근 5년간 매년 150이닝 이상을 던졌고 동일기간 우완투수중 투구이닝(824.1이닝), 다승(59승) 1위의 투수입니다. 물론 평균자책점이 약간 높아 꾸준히 로테이션만 지키면서 롯데 타선의 힘으로 승수만 쌓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있었지만 지난 시즌에는 오히려 엄청난 불운으로 5년 연속 두자리수 승리에는 실패(7승)했지만 방어율은 3.31로 크게 낮추기까지 했습니다.

 그런 그가 호주전에 나섰습니다. 상대가 엄청난 강팀은 아니지만, 만약 패배한다면 모든 것이 끝인 상황이었습니다. 그는 비록 사사구 3개를 내주며 매우 효율적인 피칭을 하지는 못했지만, 4이닝을 삼진 5개를 곁들여 잘 막아냈습니다. 상대가 익숙하지 못할 것이라 예상했던 종으로 떨어지는 변화구(포크, 커브)는 헛스윙을 잘 유도했고 투심에는 힘이 있었습니다. 사실 정규 시즌에는 많이 던지지 않던 투심을 많이 던져서 조금 놀랐습니다.

좋은 성적에도 끝내 콜업되지 못하며 마이너리그에서 먹었던 눈물 젖은 빵들이,

한국 최고의 인기구단 롯데 자이언츠의 에이스 송승준의 성장 동력이 되었을 것입니다.

 

 아마 분수령은 1회말이었을 겁니다. 1회초 든든한 3득점을 올리고 맞은 첫 수비에서 1사이후 볼넷으로 주자가 한 명 나간 후에 보크 판정이 나왔습니다. 솔직히 전혀 이해할 수 없습니다. 분명히 완벽한 정지동작 이후에 나온 주자 기만으로 볼 수 없었고 연속동작이었습니다. 그리고 더욱 걱정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송승준은 사실 정지 이후에 왼쪽 어깨를 한 번 털고 투구를 하거나, 고개를 몇번씩 주억거리다가 벼락같이 1루에 견제구를 뿌리는 등 변칙 동작이 좀 많은 투수입니다. 그런 그가 마음편안히 시작한 1회말 갑자기 흔들릴까봐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저의 기우였습니다. 송승준은 언제나처럼 마운드 위에서 충분히 공격적이었고 선발투수로서 그의 몫을 다했습니다.

 

형님

 36. 그의 등번호이자 지난 시즌 8년만에 친정으로 귀국했을 당시의 그의 나이였습니다. 데뷔후 언제나 엘리트 코스만을 밟아온 그는, 지난 시즌 그의 유니폼 등판에 붙어있는 나이가 무색하게 활약했고 한국시리즈 MVP에 오르며 많디 많은 그의 개인 타이틀 경력에 또 한 줄을 추가했습니다.

 그는 다시 대표팀에 승선했습니다. 소속팀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며 2009년 2회 WBC참가를 고사했던 그가 당당히 팀을 우승으로 이끌고 복귀했음에도 여론은 그렇게 좋지만은 않았습니다. 특히 그와 대조되는 젊은 홈런타자이자 지난 시즌 MVP에 빛나는 박병호 선수를 제외했기 때문에, 기세와 실력보다 네임 밸류만 따지냐는 비판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언제나처럼 모든 비판을 스스로 잠재웠습니다. 이번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모든 중심은 이대호선수가 잡아줄 것이라며 자신은 묵묵히 뒤를 받치겠다고 인터뷰를 해놓고, 스스로 물먹을 타선에 불을 붙였습니다. 초반득점에 성공하지 못하면 다시 분위기가 이상하게 흘러갈 수 있는 상황, 그는 대한민국의 첫 장타로 첫 타점을 올렸습니다.

 사실 타격도 타격이지만 저는 7회말 그의 1루 강습타구 처리에 더욱 감명을 받았습니다. 많은 분들이 그의 방망이 실력에 묻힌 그의 수비실력을 잊고 있지만 그는 최고의 1루수입니다.(그래서 지난 시즌 이승엽 선수가 지명타자로 골든글러브를 수상한 것에 약간은 묘한 감정을 느꼈습니다.) 그는 1루수로서 센트럴리그 연속이닝 무실책 기록(1225이닝, 2위-오사다하루 991이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30대 후반임에도 여전히 가장 헌신적이며, 가장 견고한 1루수였습니다.

 

아우들

 형님이 이렇게 앞서 리더십을 발휘하는데 아우들이 가만히 바라만 본다면 아무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대표팀 아우들은 그렇게 형님의 리더십이 퇴색되게 놔두지 않았습니다. 지난 경기, 승패를 떠나 한국야구의 팬으로서 최고의 3루수 최정이 잔뜩 움츠러든 모습이 너무 보기 싫었습니다. 그러나 하루를 쉬고 난 후 그는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넓은 수비범위와 정확하고 힘있는 송구는 그의 트레이드마크입니다.

 '볼넷만 골라내라고 세운 4번 타자가 아니다!' 네덜란드전 이후 '조선의 4번타자' 이대호 선수에게 쏟아진 비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형님을 따라 불방망이를 휘두르기 시작했습니다. 3타석 연속 안타를 치며 타점도 신고했습니다. 다만 1루수 자리를 형님에게 내주지는 않을지. 사실 수비 실력으로는 롯데팬인 저로서도 도저히 이승엽과 이대호를 비교할 수 없으니까요.

 베이징올림픽에서 극도로 부진하던 이승엽 선수가 어떡하면 그렇게 잘 맞출 수가 있냐 물었던, 당시의 신인급에서 이제는 한국야구의 간판으로 성장한 김현수 선수 또한 대단했습니다. 찬스에서는 타점을 올려주었고 깊은 수비위치에도 얕은 외야플라이들을 근성으로 처리해주었습니다.

 

철벽 불펜

 박희수의 공은 정말 엄청났습니다. 우타자 기준으로 바깥쪽 속구의 컨트롤은 완벽하지 않았지만, 몸쪽으로 속구를 붙인 후 나오는 바깥쪽 가라앉는 체인지업은 언터쳐블이었습니다. 노경은은 그동안 컨디션이 좋았다는 뉴스들이 언론 플레이가 아니었음을 증명했고, 정대현과 오승환은 왜 그들이 2000년대 한국 야구 최고의 불펜, 마무리 투수인지 증명했습니다.

 

여전히 남은 과제

 모든 것이 끝난 것이 아닙니다. 이제 겨우 다시 도약할 발판을 마련했을 뿐입니다. 우리는 열광적인 홈팬들의 응원을 등에 업은 타이완과의 1라운드 최종전을 앞두고 있습니다. 이런 위급한 상황에서, 여전히 과제들은 보입니다.

 앞서 지적했던 강민호, 정근우 선수... 여전히 높은 쪽 속구에 전혀 대처가 안 되고 있습니다. 컨디션에 따라 변화구에 대한 감을 끌어올리기 어려운 것을 이해할 수 있지만 속구를 노려치는 것까지 전혀 불가능한 상태로서는 주전 포수와 2루수로서 아쉬운 모습입니다. 그리고 이 두 선수와 함께 이번 대회 타율 0.000을 보여주고 있는 강정호 선수까지... 이들만 부활한다면 더 이상 타선으로 걱정할 일은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다시 일전, 대만전

 숨가쁘게 다시 일전입니다. 홈팀 대만과의 결전에 선발로 나올 투수는 좌완 트리오(류현진, 김광현, 봉중근)을 대신해 대표팀의 왼손을 맡을 장원준 선수입니다. 경찰청 복무로 1년간 콤비를 맞추지 못한 '절친' 강민호 선수와의 찰떡궁합 배터리를 보여주기를 바랍니다. 상대 선발은 소프트뱅크에 소속된 양 야오쉰. 오늘 저녁 6시 반, 타이중 구장에서, 다시 일전이 시작됩니다.

Posted by 마산야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