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훈한 전설들의 만남에 끼어든 정치인

 어제 도쿄돔에서 펼쳐진 요미우리와 히로시마 간의 프로야구 경기에 앞서 의미있는 시구-시타가 있었습니다. 바로 지난해 은퇴를 결정한 '고질라' 마쓰이 히데키와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종신 명예감독 나가시마 시게오의 시구-시타였습니다. 마쓰이는 요미우리에서 10년간 0.304, 332홈런, 889타점을 기록하며 최고의 선수로 활약하고 MLB까지 진출했고, 일본내에서도 장차 요미우리의 감독이 될 것이라는 평이 많습니다. 나가시마는 타율 1위 6회, 홈런 1위 2회, 타점 1위 5회, 최다안타 10회에 감독으로서도 요미우리를 두 번 우승시킨 일본 프로야구 최고의 전설 중 한 명입니다. 두 야구인은 시구-시타 이후 국민영예상을 수상했습니다. 물론 이날 도쿄돔을 찾은 많은 야구팬들도 두 전설의 등장에 환호했습니다.


 그런데 이 훈훈한 광경에 썩 적절하지 못한 '덤'이 있었습니다. 바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였습니다. 최근 야스쿠니 신사 참배 등으로 한국과 중국 등 이웃 국가들의 곱지않은 시선을 받고 있던 그가 시구-시타에 심판으로 참가하고 국민영예상을 수여한 것입니다. 그런데 등번호를 살펴보니 무언가 이상합니다. 마쓰이는 일본프로야구에 데뷔해서부터 MLB에서까지 사용하던 등번호 55번을 썼고, 나가시마 시게오도 현역 시절부터 사용한 등번호이자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영구결번인 3번을 썼습니다. 그런데 아베 총리의 넘버는 96였습니다. 아베 총리는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등번호 96번은 자신이 일본의 96대 총리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국민들의 인식이 불충분한 헌법 96조 개헌과도 연관된 메시지라는 사실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사진출처 : 연합뉴스>

 


일본 헌법 96가 도대체 뭐길래?

 그렇다면 일본 헌법 96조는 도대체 무엇이고 그것의 개정이 왜 문제가 되는 것일까요? 일본의 헌법 96조는 개헌 발의 요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헌법 개정 의안이 제출될 수 있는 조건을 상원의원과 하원의원에 해당하는 중의원과 참의원 2/3의 찬성으로 명시한 현행 조항을 1/2로 바꾸려는 것입니다.

 이렇게 요건을 바꾸어 실제로 개헌하려는 내용은 무엇일까요. 바로 이른바 '평화헌법'입니다. 평화헌법은 2차세계대전에서 패한 일본이 1946년 11월에 공포한 헌법 9조의 별칭으로, 주된 내용은 일본의 군대 보유나 타국과의 교전권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때문에 일본은 사실상의 군대임에도 불구하고 자위대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평화헌법을 개정해 대대적인 군비확충을 시도하려는 것입니다. 이미 그 선행작업으로서 개헌 발의가 되면 진행되는 국민투표의 통과 기준을 2/3에서 1/2로 낮춘 일본의 극우 정권입니다. 이제 본격적인 개헌을 위한 정치적 의도를 야구장에서까지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스포츠는 정치의 꼭두각시가 아니다

 스포츠가 정치에 이용된 예는 많습니다. 전세계적 인기 종목인 축구는 정치인들이 국민들의 분노를 무마시키는 데 즐겨 사용한 도구입니다. 독재자 무솔리니가 1934년 이탈리아 월드컵을 유치해 심판 매수와 협박 등 갖은 수단을 동원해가며 이탈리아를 우승시켜 파시스트 정권을 홍보하려 했던 것은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 축구가 인기가 많은 남미에서도 군부가 월드컵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했고, 실제로 펠레는 조국에서 군부가 국민을 탄압하고 있고 이를 덮기 위한 수단으로 월드컵을 활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 월드컵 대표팀 제의를 거부했습니다.

 한국 야구에서도 이런 사례는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한국프로야구의 태동 자체가 당시 국민들의 관심을 정치에서 멀어지게 하려는 정권의 3S 정책의 일환이었던 것은 모두가 아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프로야구 초창기 최고의 강팀이었고, 경기 중에도 승기를 잡으면 팬들이 '목포의 눈물'을 부르며 애환을 달래던 해태 타이거즈의 패배를 원하는 세력이 있었다고 김응룡 현 한화 감독이 밝히기도 했습니다.


 물론 이런 나쁜 사례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레오 프랑코 치하의 스페인에서 핍박받던 바스크 지방 사람들은 축구를 저항의 수단으로 삼았습니다. 당시에는 억압에 저항하는 문구를 어렵지 않게 축구장에서 찾아볼 수 있었고 축구선수들은 억압된 정치범들의 사면을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코트디부아르의 축구영웅 디디에 드록바는 조국의 내전을 수습하기 위해 노력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민초들의 삶을 감싸안는 것은 스포츠의 또 하나의 역할입니다.

Drogba und der Kapitän der ägyptischen Mannschaft, Hassan

코트디부아르의 영웅 드록바는 내전 수습, 생필품 지원, 에이즈 퇴치 홍보대사 등 조국을 위해 '그라운드 밖'에서도 열심히 뛰었다.


 스포츠는 인생과 같습니다. 부진과 시련이 있고, 이를 극복하는 영웅적인 스토리가 있습니다. 서민들의 삶의 애환을 달래주는 드라마가 있습니다. 마산야수는 그런 스포츠가 지배권력의 정치적인 홍보 수단이 되는 것을 강력하게 반대합니다.

Posted by 마산야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