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언제나처럼 야구 영상들과 스탯들을 보면서 하루를 마무리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기분은 묘했습니다. 새로운 한 달의 시작이기에 앞서, 저에게는 참 다양한 기억이 공존하는 노동절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중 아끼는 동생과 통화를 하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근로자의 날, 노동절을 다르게 표현하는 말로 한국 사회에서는 훨씬 보편적인 단어입니다. 동생이 오늘 근로자의 날이라고 그러더군요. 그러나 절대 근로자라는 단어는 그 단어가 지칭하는 인간들의 삶을 대변해주지 않는 단어입니다. 勤勞. '부지런한 근'에 '일할 노'입니다. 저는 평소처럼 근로는 정치적으로 올바른 단어는 아니라고, 차라리 노동이 훨씬 중립적인 단어라고 이야기해주었습니다. 그러자 동생이 그러더군요. 노동은 왜인지 무섭고, 험한 단어 같다고, 노동자는 육체노동자들만이 떠오른다고.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듣지만 또 기분이 묘하더군요. 무서운 단어라... 勞動. '일할 노'에 '움직일 동'. 말 그대로 일한다는 뜻인데,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상당히 지배자, 혹은 관리자의 시각에서 바라본 단어보다 훨씬 중립적인 단어이지 않냐고 말했지만 쉽게 이해되지 않나 봅니다. 그 동생도 성인이고 절대 훈계하려는 섣부른 시도는 아니었기에 간단히 제 생각을 말해주는 것에 그쳤지만, 저는 또 다시 느꼈습니다. 한국에서 '근로'라는 단어는 언어의 정치적 효과를 충분히, 아니 초과 달성한 것은 아닌지.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근로자가, 그 자신의 권리를 찾기 위한 목적으로 어떠한 행동을 취한다면 그것은 그 본분을 망각한 것입니까? '근로자의 날'은 단순히 열심히 일한 이들이 하루 쉬고, 심지어 그날도 일한다면 50%의 특근 수당을 받는 날입니까?(특히 언론에서 이 부분만 다루어지고 있는 것이 매우 아쉽습니다.)
어떤 날이 기념되고 있는 것에는 보통 그 유래가 있고, 역사가 있습니다. 왜 노동절의 역사는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습니까. 1886년 5월 1일 미국 시카고에서 있었던 기념비적인 총파업을 기념하고, 단순히 기념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또 다른 투쟁을 펼쳐나가는 날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쉽게 알 수 없습니다.
오늘도 여느 때처럼 사무실을 지키고 있는 저는 초과수당을 받게 되겠죠. 노동절이면 거리에서 부르던 구호들과 민중가요들을 조용히 입속으로 읊어보면서... 그러나 노동절에, 노동의 현장 곳곳에서, 당당한 노동자의 권리를 주장하고 계신 분들이 계십니다. 그분들께 지지의 마음을 보내며, 컴퓨터로 글이나 끄적이고 있는 제 자신을 안타까워 하면서, 하루를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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