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영국의 보수당 정권의 수장으로서 영국 총리를 지낸 '철의 여인' 마가렛 대처가 영국 현지 시각으로 4월 8일 뇌졸증으로 별세했습니다. 이미 10여 년 전 처음 뇌졸증이 발생했고, 이후 건강을 많이 회복했다는 소식이 있었으나 근래 영국에서 가장 주목받았던 행사인 2011년 윌리엄 왕자의 결혼식에 참석하지 않는 등 공식적인 자리에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지난해에는 방광 수술을 받는다는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습니다.
중류층의 독실한 감리교도 집안의 딸, 보수정치인을 꿈꾸다
그녀는 최상류층 가장 출신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그랜덤이라는 작은 도시의 시의원과 시장을 역임했으나 식료품 가게 점원부터 시작해 정치에 투신해 자수성가한 인물이었습니다. 자연스럽게 정치를 가까이하며 자란 대처는 옥스포드 대학에서는 화학을 전공했습니다. 그리고 이 시기부터 당시 영국 대학가에서 압도적이었던 진보파에 의문을 갖게 됩니다. 최상류층 집안에서 자란 이들이 민중과 혁명을 논하는 것에서 부조리를 본 것입니다.
이후 그녀는 비교적 마이너했던 옥스포드 보수연합에 들어갔고, 이후 런던의 핀츨리 선거구에서 의원 생활을 시작하게 됩니다. 1965년 보수당의 히스 내각이 들어서자 그녀는 각종 장관 자리를 역임하며 역량을 키웠습니다. 그리고 1974년 히스 내각이 붕괴된 위기를 기회로 활용하여 당권에 도전했고 보수당 최초의 여성 당수가 됩니다.
'철의 여인'으로 군림하다
이후 경기불안으로 높은 세율과 인플레이션, 호전적인 노조에 대한 반발이 극도로 달했던, 이른바 '불만의 겨울' 직후 총선에서 승리하며 영국 최초의 여성 수상의 자리에까지 오르게 되었습니다. 이후 그녀의 노선은 매우 뚜렷했습니다.
TINA(There Is No Alternative), 신자유주의가 곧 진리라 주장했던 그녀의 통치 아래에서 '노조의 천국'이라 불렸던 영국은 변화하기 시작합니다. 사업장의 모든 노동자는 노조원이어야만 하던 클로즈드 숍(Closes-shop)을 폐기하고 복수노조를 인정함으로써 노조의 권력을 무너뜨려 버립니다. 탄광 노조와의 힘겨루기에서 그녀의 강철 같은 면모는 더욱 잘 드러납니다. 20곳에 이르는 국영 탄광을 폐쇄하고 2만 명의 노동자를 해고하겠다는 계획에 대대적인 파업이 있었지만 대처는 힘겨루기에서 밀리지 않으며 오히려 노조 내분을 유도하고, 국가가 미리 확보해둔 석탄 재고를 풀어 국민들은 안정시키며 승리합니다. 대외적으로는 미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며 영국의 세력을 넓히는 흐름을 보였습니다. 유럽 최초로 미국의 크루즈 미사일 배치를 허용하고, 카다피 통치하의 리비아를 타격하려는 미 공군 폭격기에게 영국 공군 기지 사용 또한 허가했습니다. 동시에 아르헨티나와의 영토 분쟁을 포클랜드 전쟁의 승리로 마무리지었습니다. 이러한 강경일변도의 정책들은 가시적인 효과를 유도했고, 그녀는 아주 튼튼한 지지기반을 갖추게 됩니다.
'사회'는 없고, 고통받는 '개인'들만이 남다
그러나 그녀의 독단적인 정책들은 문제를 불러오기도 합니다. 아직도 마산야수는 대처하면 떠오르는 영화로 그녀의 삶을 직접 다룬 '철의 여인(The Iron Lady, 2011)'보다 폐쇄 예정의 작은 탄광촌의 밴드 이야기를 다룬 '브래스트 오프(Brassed Off, 1996)'를 꼽습니다. 한창 혈기는 왕성한데 좁은 학교에 구속되어 경쟁에 지쳐가던 고교 시절, 인간은 시장이라는 구조 속에서만 살아가는 것이 아니기에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진정한 인간성이란 무엇인지를 고민하게 만들었던 영화로 기억합니다. 많은 서민들의 삶이 "누구나 자신의 몫을 해야"하며 "사회는 없고 오직 개인들이 존재할 뿐"이라는 대처리즘 아래에서 보호받지 못하고 고통받기도 했습니다.
행동하는 '철의 신념'
하지만 여전히 대처는 위대한 영국인이며, 역사는 그녀의 이름을 오래 기릴 것입니다.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며 정부의 권력약화를 지향하는 자유주의와, 이와는 반대로 개인의 불완전성을 근거로 전통이나 종교 등 사회의 틀로써 개인을 제약하는 보수주의가 섞여 사상적으로 명확하지 못했음에도 대처리즘은 그 당시 어떠한 정치인의 반대도, 공격도 없이 영국을 통치해 나가는 기틀로 자리잡았습니다. 그녀는 영국의 영광을 재현하고 현재의 모순을 타개하려던 행동가였지 유토피아를 꿈꾸는 사상가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마가렛 대처의 행동하는 신념이 그녀를 '철의 여인'으로 만든 것입니다.
오늘의 한국 사회를 돌아보다
2013년 현재의 한국사회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어쩌면 한국판 '불만의 겨울'을 보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 불만은 극단적인 특정 주장에 대한 조용한 다수의 일방적인 반감이 아니라 깊은 이념의 골을 경계로, 다수 대 다수가 반목하고 있는 현상이기에 영국의 그것보다 더 위험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국민의 절반은 강남의 고층 아파트와 높은 등록금, 더 이상 개천에서 용이 '못' 난다는 현실에 불만을 품고 나머지 절반은 분단현실에도 불구하고 무책임하게 제시되는 민족의식, 빈부격차를 줄이자는 선동적 공약들에 반대합니다. 이 위태로운 계절을 종식시키는 것은 대처와 같은 강력한 카리스마의, 또는 부친의 카리스마의 후광을 입은 정치인일까요?
'노조의 천국'은커녕 언제나 목숨걸고 싸워야만 목숨을 부지하는 현실을 견뎌왔는데, 이제는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높은 크레인 위에서 허공을 향해 외쳐야만 하고, 온몸을 다쳐가면서도 죽은 동료의 분향소를 지키지 못해 눈물 흘리는 대한민국의 오늘을 바라보며, 마가렛 대처의 명복을 빕니다.
'세상만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EPL 최종전, 두 명의 우상을 떠나보내며 [QPR vs Liverpool] (2) | 2013.05.20 |
---|---|
근로자의 날? 오늘은 124번째 세계 노동절(메이데이, May-day) (7) | 2013.05.01 |
'가왕' 조용필 19집 [Hello] 들어보니...연기자는 안성기, 가수는 조용필처럼... (2) | 2013.04.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