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 ML 유일의 전 구단 영구결번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메이저리그에는 수 많은 영구결번 선수가 있습니다. 시애틀 매리너스처럼 구단 영구결번이 없는 팀도 있지만 전통의 강팀인 뉴욕 양키즈는 베이브 루스(3번), 루 게릭(4번), 조 디마지오(5번), 요기 베라(8번) 등 전설적인 강타자들을 비롯해 15개의 구단 영구결번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메이저리그의 모든 구단이 영구결번으로 지정한 번호가 있습니다. 바로 42번입니다.



4월 15일, 새로운 역사가 열리다.

 1947년 4월 15일, LA 다저스의 전신인 브루클린 다저스 소속의 한 선수가 에베츠 필드에서 메이저리그  데뷔전을 치렀습니다. 선수 개인에게도 무척 떨리고 기억에 남을 날이었겠지만, 그 당시의 그라운드에서는 약간 '독특했던' 그 선수는 ML의 새로운 역사를 열었고, 그와 '특징'을 공유하고 있는 수많은 이들 또한 떨리는 마음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가 바로 메이저리그 전 구단 영구결번의 주인공인 재키 로빈슨(1919~1972)입니다.

 그는 메이저리그에서 10시즌 동안 통산 3할1푼1리의 타율과 1518안타, 137홈런, 734타점, 197도루를 기록했습니다. 물론 뛰어난 성적(시즌 MVP 1회, 최다도루 2회)입니다만, 한 구단의 영구결번으로도 부족할 수 있는 성적입니다. 그러나 그는 언제나 많은 이목을 집중시켰습니다. 바로 그의 피부색 때문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는 메이저리그 최초의 흑인 선수였습니다.

 그는 UCLA 대학 시절부터 매우 주목받던 스포츠 유망주였습니다. 단순히 야구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멀리뛰기를 비롯한 육상, 농구, 미식축구, 심지어는 테니스와 수영에서까지 모두 엄청난 재능을 보였던 그는 돌연 육군 장교에 지원합니다. 그러나 당시 극심했던 인종 차별의 벽을 느끼며 좌절하고 말았고, 그 와중에 야구에 도전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도전은 브루클린 다저스의 단장이자, 인종차별을 허물고자 노력하는 선지자였던 브랜드 리키의 도움으로 가능했습니다. 많은 방해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우여곡절 끝에 로빈슨은 메이저리그에 데뷔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그의 나이는 28살이었습니다.

 힘들게 데뷔하고 나니 그에게 가해지는 차별과 위협은 오히려 더 심해졌습니다. 팀 내에서도 그를 방출해달라는 탄원서가 있었고, 다른 팀들에서는 그의 퇴출을 위한 파업 논의도 있었습니다. 심지어 로빈슨에게 부상을 입히라는 지시를 내린 타 팀 감독도 있었습니다. 로빈슨의 동료들은, 이러한 시련을 겪음에도 뛰어난 야구 실력으로 당당히 주전 1루수를 꿰찬 그를 지지하게 됩니다. 항상 '그라운드에 나서면 총으로 쏘겠다.'는 편지들을 받던 그에게 동료인 진 허마스키는 말했습니다.

 "우리가 모두 42번을 달고 나가면 어떨까?"



긴 세월이 흘러 마침내 실현된 농담

 그 말은 반 세기가 넘게 지난 2004년에야 실현됩니다. 로빈슨의 데뷔 50주년이었던 1997년에 메이저리그 사무국이 역사상 최초로 그의 배번이었던 42번을 메이저리그 전 구단 영구결번으로 지정한 데 이어, 2004년부터는 그의 데뷔 경기가 있었던 날짜인 매년 4월 15일에는 모든 선수들이 42번 유니폼을 입고 경기를 치르고 이날을 재키 로빈슨 데이로 이름 붙이게 된 것입니다.

Jackie Robinson Day

재키 로빈슨 데이에 모두 42번 유니폼을 입고 입장한 LA 다저스 선수들

 

 사실 야구는 만능 스포츠맨이었던 재키 로빈슨이 가장 두각을 드러내지 못한 종목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인생은 구경만 하는 스포츠가 아니다."라는 그의 말대로, 부조리한 이 세상에 도전하기 위해 위대한 첫 발걸음을 뗀 것입니다. 1962년, 흑인 선수 최초로 얻은 명예의 전당(HOF) 헌액이라는 영광은, 그 위대한 선구자에게 야구팬들이 느낀 경의의 표현입니다.



"루스가 야구를 바꾸었다면, 로빈슨은 미국을 바꿨다."

 현지 시각으로는 아직 로빈슨 데이, 즉 4월 15일인 오늘 LA 다저스는 샌디에고 파드리스와 경기를 펼칠 예정입니다. 물론 류현진 선수가 경기에 나설 일은 없겠지만, 그 역시 그를 상징하는 99번을 잠시 내려두고, 말끔한 42번 유니폼을 입고 경기장에 입장할 것입니다. 특히 재키 로빈슨이 뛰었던 브루클린 다저스의 후신인 LA 다저스는 많은 이벤트를 준비했습니다. 재키 로빈슨을 영입했던 브랜치 리키 단장의 증손녀가 경기 시작 전 국가를 부르고, 로빈슨의 생애를 다룬 영화 '42'에서 리키 단장을 연기했던 해리슨 포드가 시국를 하며, 재키 로빈슨의 아내 레이첼 로빈슨이 직접 "It's time for Dodger baseball"이라는 다저스 홈경기 개시 구호로 게임의 시작을 알릴 예정입니다.

 미국이라는 나라, 야구라는 스포츠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봄직한 날입니다. 재키 로빈슨, 그가 있었기에 우리가 열광했던 박찬호가 있었고, 지금의 류현진과 추신수가 있습니다. 재키 로빈슨이 그라운드 위에서 다른 선수들과 달랐던 점은 딱 두 가지 뿐입니다. 바로 피부색과,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더 강렬하게 불탔던 그의 열정. 베이브 루스는 야구를 바꿨지만, 재키 로빈슨은 미국을 바꿨습니다.

Posted by 마산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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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4.16 08:13 신고

    정말 큰 의미가 있는 날이네요. 그러고보니 유색인들이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역사가 그리 길지 않네요. 편견과 차별의 벽을 부순 도전이라는 점에도 성적 이상의 가치가 있는 것 같습니다.

    • 2013.04.16 08:18 신고

      네, 전 구단 영구결번이라니. 정말 그 의미를 모두가 인정하지 않고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 점에서는 우승 프리미엄 없이는 결번을 하지 않으려고 하는 국내 구단들과 대조가 되기도 하구요.

  2. 2015.04.17 03:15

    글 잘 읽었습니다. 정말 의미있는 날이었네요. 덕분에 각종 궁금증이 많이 풀린 것 같습니다.

 류현진이 오늘 새벽 5시에 펼쳐진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와의 경기에서 6/1이닝 2실점 6K로 승리투수가 되었습니다. 팀의 3연승을 이어나가는 동시에 개인적으로 감격의 첫 승리입니다.

 

Hyun-Jin Ryu Spring Training 3.17.13

 

 위기는 첫 이닝부터 왔습니다. 샌프란시스코 자어인츠와의 경기와 마찬가지로 선두타자를 출루시켰고, 1사 이후 피츠버그의 간판타자 맥커친과의 승부에서 3구째, 좌월 투런 홈런을 허용했습니다. 맥커친은 이 경기 이전까지 2할3푼5리의 저조한 타율을 기록하고 있었지만 역시 팀의 해결사로서의 면모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나 SF전에서는 침묵했던 타선이 이번에는 류현진을 도왔습니다. 1회초 2실점한 이후 곧바로 1회말 곤잘레스의 2타점 적시타로 균형을 맞추었습니다. 그러자 류현진의 공도 살아났습니다. 경기 초반 패스트볼의 구속이 140대 초중반에 머무르던 것이 93마일(약 150km)까지 살아났습니다. 홈런을 허용했던 맥커친과의 이후 승부에서는 철저한 변화구 승부만으로 우익수 플라이를 잡아내는 등 노련한 모습도 보여주었습니다.

 이후 팀 타선이 힘을 내 6:2로 경기가 마무리되었습니다. 이로써 LA 다저스는 3연승을 기록하게 되었습니다. 류현전 선수가 앞으로도 좋은 성적 거두어 신인왕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마산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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