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기아 대 한화 경기가 하도 말이 많길래 간만에 하이라이트를 챙겨 봤다. 이건 명확히 '안티 베이스볼'이다.



1. 
 솔직히 하이라이트로만 봤을 때 김병현의 공이 그렇게까지 나쁜지 잘 모르겠다. 제구는 좀 그렇다만 어쨌거나 사이드에서 나오는 140의 직구는 그리 쉬운 공은 아니니까.

 

그런데 벌써 7점의 리드를 안고 투구 수는 20개 조금 넘은 상황에서 3회 초에 등판을 했는데 스트라이크 존으로 그 140짜리 직구조차 집어넣지 못한다. 싱커인지 체인지업인지 구분도 무의미해 보이는 그 떨어지는 변화구가 자꾸 너무 빨리, 너무 몸쪽에서 떨어졌다. 물론 몸쪽 잘 제구된 직구로 피에로부터 땅볼을 이끌어 낸 것이 더블플레이로 이어지지 않은 것은 아쉬웠지만, 조금 더 과감하게 승부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어렵게 어렵게 승부하기로 작정했던 거라면 경기 운영 상의 미스일 것이고, 경기 초반에 한 가운데로 힘 있는 직구를 집어넣을 제구도 안 된다면 투수로서 결격이고, 이미 힘이 부친 것이라면 그런 투수를 선발이랍시고 마운드에서 핵 실험을 저지른 감독(아 무등산의 폭격기여! 알고보니 B-29였나보다. 챔피언스필드에서는 핵실험이 진행되었다.)의 만행이다.



2.
 마무리 투수의 핵심은 역시 낮은 피출루율로 역전의 가능성 자체를 막는 것이겠지만, 일발장타를 막기 위한 피장타율도 빼놓을 수 없다.


 그러나 최근에 KBO 경기를 거의 끊다시피 한 내가 본 경기는 손승락이 칸투에게 투런 맞고 실신하자 이용찬이 9회말 선두타자 박병호에게 비거리 130m는 되어 보이는 대형 홈런 맞아서 넥센팬들 희망고문했던 6/8(일) 넥센 대 두산 경기. 그리고 한화 윤규진도 기아 어센시오도 홈런을 맞은 어제 경기였다.

 야구의 꽃은 홈런이고 타격전이야말로 팬들을 경기장으로 불러 모은다고? 아니다. 야구의 참맛은 이른바 '계산이 서는' 쫄깃한 경기에 있다. 리그에 완봉은 전무하고 지난 시즌까지만 해도 훌륭했던 봉중근, 손승락 같은 마무리들도 난타당하는 요즘의 리그가 재미있나?

 그리고 마무리의 가치에 대해서 '수호신'으로 칭하는 한일 양국과, 불펜 투수들 중 가장 구위가 좋은 투수 정도로 평가하는 미국의 입장이 갈리긴 한다. 물론 투수들 중 짱짱맨은 긴 이닝을 안정적으로 막아주는 1, 2선발 원투펀치이다. 하지만 여전히 마무리는 경기 후반을 운영하기 위한 불펜진의 기둥이고 실제로 선발투수들에 비해 마무리투수의 가치를 평가절하하는 세이버 매트릭스에 대해서도 리드하던 경기 막판에 역전을 허용하며 받는 충격과 이후 경기에서 이어지는 악영향에 대한 고려가 부족하다는 비판이 있다. 결국 선발도 마무리도 전부 무너지는 현재의 KBO는 투병타신이라는 게 맞는 말이다.



3.
 작년 WBC에서 네덜란드 감독은 3년간 한국야구를 경험한 사도스키에게 전력분석을 요청했고 실제 작성된 소위 '사도스키 리포트'가 화제가 되었다. 실제로 호흡을 맞추었거나 상대했던 리그의 다양한 선수들에 대한 가감없는 평가가 많이 회자되곤 하는데 나는 '모든 경기가 포스트시즌처럼 총력적으로 진행된다'는 리그 전반에 대한 평가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어제 경기에서 한화와 기아는 활용가능한 모든 불펜 투수들을 등판시켰다. 정확히는 그걸로도 모자라서 선발투수들을 마무리로 등판시키까지 했다. 기아 선발진의 희망 김진우는 결국 마지막 아웃가운트를 잡지 못했고, 한화는 승리를 지키기 위해 지난 주 유일한 승리 경기의 승리투수 안영명을 올렸다.

 80년대 이상윤-선동열 등 에이스급 투수들의 마구잡이 땜빵에 익숙한 김응룡 감독과 실제 그 운영의 핵심이었던 선동열 감독의 맞대결이어서 그런지 정말 투수 운용도 구시대적이었다.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리그가 반 이상 남았지만 포스트시즌 진출 가능성이 현저히 떨어지는 7-8위 팀들간의 대결에서 이렇게까지 총력전이 나온 이유를 모르겠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8회에 마무리 투수들이 등판하는 것이 매우 자연스러운 한국야구의 현실이 안타깝다. (정말 10구단 체제가 굴러가면 리그 수준이 폭망할지도 모르겠다. 차라리 출장 외국인 선수 수만 제한하고 육성에는 제한을 두지 않는 것이 현실적일 것이다.)



4.
 다들 역대급 타격전에 열광하고 있는데 어제 사실 매우 진귀한 기록이 탄생했다. 바로 기아의 한 경기 5개의 3루타였다. 어쩌다가 매일매일 OOO의 사이클링히트(히트포더사이클이 정확한 표현이라고 지적하는 10선비 잼) 아쉽게 무산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볼 수 있게 된 걸까.


 어제 경기에서 3루타를 비롯한 장타가 많이 나오게 된 결정적 원인은 연속해서 실패한 외야수비 시프트 때문이었다고 보는 것이 맞다. 장타력이 부족한 신종길이 나오니까 외야수비를 당겼다가 중견수 키 넘어가서 3루타, 잡아당기기 좋아하는 김주찬이 나오니까 수비를 좌측으로 당겼다가 우중간으로 빠져서 3루타 등등.
수비 시프트, 특히 외야 수비시프트는 상대 타자에 대한 믿음에 가까운 분석이 뒷받침 되어야만 하는 일종의 '도박'이다. 그리고 그러한 도박을 펼치는 이유는 이 아웃카운트 하나가 경기의 흐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리라는 '계산'이 섰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무리 돌이켜 보아도 어제 경기가 외야 플라이 하나 잡아낸다고 결정적인 흐름을 잡을 수 있는 경기로 보이지는 않는다. 이미 3회말까지 서로 15점을 주고 받은 타격전. 차라리 정석대로 경기를 풀어나가면서 남은 긴 이닝에서 타선의 폭발을 바라는 것이 현실적이지 않나?
물론 수비시프트는 메이져리그에서도 매우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는 '선진 야구 문물'이다. (그리고 ML 불펜 코치로도 활약하셨던 모 구단의 모 감독께서 매우 사랑하신다.) 그러나 이러한 시프트에는 누적된 데이터가 필요하다. 그래, 백 번 양보해서 1년 162경기를 치르는 메이저리그보다 128경기에 불과하지만 단일 리그인 KBO의 상대 전력 분석이 더 빠삭하다고 치자. (메이저리그 전력분석요원들은 상대팀이 하도 많아서 귀찮아서 태업하신단다)

 우리가 절대 무시하지 말아야 할 것은 상대의 타격성향에 맞는 수비시프트를 백날 걸어봤자 기본적으로 투수의 제구가 흔들리면 무의미하단 사실이다. 당겨치라고 외야도 당겨놓고 투수는 몸쪽 제구 흔들려서 바깥쪽으로 보여주려던 공이 몰려 밀어친 안타를 맞으면 아무 소용이 없단 것이다. 이런 사실을 종합해 보면 우리나라에서 수비시프트의 활용을 논할 팀은 삼성 뿐이다. 괜히 선진야구랍시고 막 따라가지 말자. 뱁새가 황새 따라가려다간 가랑이만 찢어진다.





 어쨌거나 어제의 야구는 야구의 본질적 재미를 파괴한 명백한 '안티 베이스볼'이었다. 이용철 해설위원이 6/5(목) 경기에서 정수빈의 슈퍼플레이(http://tvpot.daum.net/mypot/View.do?clipid=59238654&ownerid=HwE6yvh6SI50) 후 '이런 플레이를 볼 수 있어서 행복하다'는 코멘트를 남겼다. 팬들은 선수들의 멋진 플레이를 보며 환호하고 싶다. 투수들이 배팅볼 투수들마냥 얻어터지는 핵실험을 보고 싶은 것이 아니라.

Posted by 마산야수